홍군의 만주 지역 사령관 린뱌오 원수는 마오쩌둥으로부터 북만주의 군사 요충지인 하얼빈을 포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가 이끄는 홍군은 계속 밀리기만 했다. 그리고 이제는 전국의 홍군이 밀리고 있었다. 그들은 압도적으로 우세한 화력을 자랑하는 장제스의 군대에 더 이상 공격을 가할 수 없었다. 이제 곧 하얼빈 함락과 함께 홍군은 만주 전 지역을 잃고, 국부군은 마침내 25년에 걸친 내전에서 승리자가 될 것처럼 보였다.

중일 전쟁(1937~45년)은 무려 1,500만 명에 달하는 중국인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토록 많은 목숨을 낭비하고서도 장제스와 마오쩌둥 두 적수는 전쟁 후의 중국을 노린 전투에서 문제를 칼로 해결하려는 자세가 허망한 것임을 깨닫지 못했다. 1945년 늦여름, 마오쩌둥은 “정치 권력은 총구(銃口)에서 나온다”는 유명한 말을 내뱉으면서 새로운 판을 벌였다. 같은 해 8월 중순에 일본이 항복한 직후 중국에서는 새로운 전투가 벌어졌다. 자신이 세계대전 중에 모아두었던 군수품에 의지하여 장제스는 국부군을 만주로 진격시켰다. 홍군은 장비나 병력에 있어서 국부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린뱌오 원수의 군대는 쓰핑제에서 최후의 대결을 펼쳤다. 린뱌오 원수는 10만 명에 달하는 창춘의 공장 노동자들을 전투에 내몰아 그들 모두를 희생시켰다. 국부군의 공격을 도저히 막아낼 수 없게 죄자 마오쩌둥은 자신의 러시아에 군사적 지원을 호소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계획에는 마오쩌둥이 권력을 잡는 것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마오쩌둥은 이제 하는 수 없이 만주를 버리고 자신의 산속 본거지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때 뭔가 예기치 않았던 일이 벌어졌다. 1945년 11월 27일, 미국 대통령 해리 S. 트루먼은 국공 내전을 해결할 중개인으로 조지 캐틀렛 마셜 장군을 임명했다. 저우언라이의 한 줄짜리 문장이 이런 일을 이끌어냈던 것이다. “장차 중국에는 소련이 존재할 것이다.” 소련이 중국에 사회주의 정부를 세워(자신들이 동유럽에서 현지인 총독들을 앞세워 통치하는 것처럼) 중국을 모스크바의 위성국으로 만들려고 굳게 마음먹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둘 수 없었다. 마침내 미 국무부는 소련과 국경을 맞댄 만주에 별도의 공산국가를 세워 미국이 지원하는 국민당 정부의 중국과 극동의 러시아 해군 기지들 사이에 완충 지대를 만든다는 전략을 수립했다.

가장 존경받는 군인이자 정치가인 조지 마셜 장군은 워싱턴이 잘못 선택한 인물이었다. 그는 뱀을 넣어두는 우리와도 같은 동양 정치계 음모꾼들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그의 초기 임무는 공산주의자들이 점령하고 있는 만주로 장제스가 쳐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일이었다. 그는 장제스 총통이 휘청거리는 공산주의자들을 공격하면 중국 공산당을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흡수 ․ 동화시키고 있던 소련의 세력권으로 마오쩌둥이 끌려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며, 그렇게 될 경우 소련은 중국의 북동부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함으로써 아시아에서 자신들의 새로운 사회주의 제국에 대한 패권 장악을 기정사실로 만들 것이라는 점을 총통에게 간략하게 설명했다.

장제스 총통의 얼굴이 뿌루퉁해졌다. 한 보좌관이 앞으로 있을 회담에 관해 브리핑하려고 하자 장제스 총통이 한마디로 쏘아붙였다. “마셜에게 지옥에나 가라고 해.” 이 국민당 지도자는 중국의 국내 문제에 미국이 간섭하는 것에 대해 분개했다. 마셜 장군은 미국이 중국에 무기를 제공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이런 조치는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에만 영향을 미쳤다. 장제스는 국부군에게 탄약이 떨어지기 전에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공세를 취하도록 명령했다. 국부군은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제스는 결코 없어서는 안 될 동맹국 미국에 의해 등을 떠밀려 하는 수 없이 장차 엄청난 불행을 초래할 조치를 취하고 말았다. 하늘과 바다와 육지에서 압도적인 우세를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장제스는 국부군에게 하얼빈에 있는 ‘소수의 홍군 병력’에 대한 공격을 중지하라고 명령했다. 만약 공격이 계속되었더라면 공산당에 의한 정권 탈취라는 마오쩌둥의 기도는 끝장났을 것이다.

이런 설명이 믿기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1946년 6월에 휴전이 선포될 당시 공산주의자들의 상황은 정말로 절망적이었다(그때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하얼빈 근거지를 포기하려던 절박한 순간이었다). 장제스가 충분한 지상군과 공군을 확보했을 때 공산당 토벌 작전에 나서지 않은 실수는 ‘공산국가 중국’이 일어서는 데 있어 결정적인 전환 요소가 되었다. 손쉬운 승리를 놓치게 된 것이 믿기지 않았던 지휘관들은 장제스에게 항의했다. 장제스는 자신의 입장을 이렇게 옹호했다. “자네들은 하얼빈을 함락하는 것이 매우 쉬울 것이라고 말하지만, 우리가 왜 하얼빈을 함락할 수 없는지 그 이유를 알고 나면 내 생각을 이해하게 될 걸세.”

장제스와 추가로 협상하면 장기적인 해결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안고서 마셜이 여전히 사태를 원만하게 수습하려고 노력하던 동안, 유럽에서 철의 장막을 따라 전개되던 위기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던 워싱턴은 아시아에서 일어나는 사태에 별 관심이 없었다. 마셜은 장제스와 마오쩌둥을 번갈아 오가며 만나는 셔틀 외교에 착수했다. 그의 협상 회담은 장제스와는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 반면, 마오쩌둥과는 상당한 진전을 이루는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이 미국인 장군은 마침내 호적수를 만났다. 그는 정치적 통일이나 국부군과 홍군의 통합 같은 문제를 두고 부드러운 외교를 구사하는 저우언라이로부터 장기판으로 치자면 “장군!” 하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마침내 저우언라이가 협상 테이블에서 정면으로 본색을 드러냈다. “우리는 국민당 정부가 만주의 점령지로부터 군대를 철수한 후에만 협상에 임할 것이오.”

이 순간부터 중국의 운명은 마오쩌둥의 선택에 의해 좌우되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사태가 변하기 시작했다. 스탈린은 자신이 극동에서 미국에 압력을 가하면 유럽에 대한 미국의 관심을 돌릴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소련은 패배한 일본군에게서 압수한 총과 탄약을 마오쩌둥에게 공급했다. 국민당 정부가 망설이는 사이에 마오쩌둥의 홍군이 파고들었다. 이런 중대한 시기 내내 장제스의 정책은 혼란스럽고 무능하며 아슬아슬하게 보였을 뿐만 아니라, 마오쩌둥의 계획이 잘 실현될 수 있는 이상적인 조건을 만들어주었다. 마오쩌둥의 세력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 가는데, 장제스의 군대는 점점 더 쇠약해지기만 했다. 마오쩌둥은 시민군을 동원하고, 이들에게 집단 정신과 규율을 불어넣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동무들, 여러분의 목표는 새로운 중국이다!”라는 마오쩌둥의 명령에 따라 공산주의자들은 마셜이 중재자로서 내놓은 해결방안을 거부했다. 마셜이 중재했던 휴전도 마오쩌둥의 군대가 공세를 취하고 나오자 무의미해졌다. 장제스의 국부군은 밀리기 시작하면서 요충지를 하나씩 포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중국은 다시금 2년 동안 파멸적인 내전에 빠져들게 되었고, 수백만 명이 희생되었다.

1948년 11월, 공산주의자들은 만주에서 국부군 40만 명을 무장 해제하면서 노획한 미국제 무기와 탄약을 사용하여 푸쭤이 장군 휘하의 20만 명에 달하는 국부군이 베이징을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1949년 1월 10일, 30만 명의 국부군 병사들이 화이허 강에서 항복했다. 공산주의자들은 양쯔 강을 건너 난징, 상하이, 광저우를 휩쓸었다. 전황이 급격히 악화되자 장제스는 중국에서 자신의 위상을 치명적으로 약화시킬 수밖에 없는 조치를 취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수도 충칭을 비롯하여 대륙 전체를 포기한 뒤 중국이 보유한 모든 금을 가지고 타이완 섬으로 정부를 옮겼다. 이 모든 것이 장제스가 미국의 압력에 못 이겨 만주의 홍군을 공격하지 않은 결과였다. 그리고 마셜 장군은 빈손으로 미국으로 돌아갔다.

마셜 장군은 결과적으로 동양과 서양이 갈라지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더욱 중요한 점은 그의 임무로 말미암아 중국이 서양을 최종적으로 거부했다는 점이다. 1912년에 쑨원이 수립했던 첫 번째 공화국의 서구식 민주주의 모델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소련에서 실습한 통제된 사회주의 방식의 새로운 질서가 차지했다. 수 세기 동안 서양 열강들의 제국주의를 혹독하게 경험했기 때문에 서양에 대해 크게 환멸을 느끼던 중국인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중국식 버전을 통해 공산주의를 서구식 민주주의보다 훨씬 더 좋은 대안으로 받아들였다. 중화인민공화국의 탄생은 엄청난 피해를 안겨준 제2차 세계대전에 뒤이어 나타난 커다란 사건이었다. 그것은 또한 다가오는 소용돌이의 원인이 되었다. 미국의 반공주의자들은 1949년에 중국을 공산주의자들에게 ‘상실’한 것에 대해 조지 마셜을 비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지 마셜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 재건을 위한 미국의 원조 계획을 세우고 집행한 공로를 인정받아 1951년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선언한 직후에 “우리가 제국주의와 사회주의 중 어느 하나를 채택하지 않는다면, 독립 국가로 존립할 수 없다”라고 선언했다. 마오쩌둥은 아시아 전반에 걸친 대외 관계에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중국이 자주성을 계속 지켜나갈 수 있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열강들 사이에서 점점 더 격화되던 냉전은 그에게 편을 정하도록 강요했다. 그는 조지 마셜에게 이미 그런 상황이 오리라는 것을 경고했었다. 미국이 타이완에 있는 국민당 정부를 노골적으로 지원하고, 또한 장차 극동의 경제 발전 과정에서 중국의 강력한 경쟁국이 될 것이라며 경계하던 패전국 일본의 재건을 돕던 상황에서 마오쩌둥의 선택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1949년 12월, 마오쩌둥은 신생 중화인민공화국과 소련 사이의 동맹 및 상호 원조 조약을 논의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떠났다. 그 조약은 1950년 2월에 조인되었다.

우리는 역사를 살펴볼 때 여러 가지 가정을 세워서 생각하기도 한다. 만약 장제스가 조지 마셜의 말을 듣지 않고 공산주의자들에게 강공을 펼쳤더라면, 워싱턴은 여하튼 그를 따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만약 워싱턴이 마오쩌둥의 경고, 즉 자신도 어느 쪽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말에 귀를 기울였더라면…… 어느 시나리오든 냉전의 전략 방정식을 완전히 바꿔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유럽에 대두된 철의 장막을 따라 증가하고 있던 분쟁에 온 신경을 집중하느라 중국을 경시하고 무시해버렸다. 그러나 소련은 그렇지 않았다.

실패로 끝난 마셜의 임무는 서구 민주주의가 아시아라는 한 대륙을 ‘깔보느라’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시기에 발생한 사태가 던져주는 교훈이다.

그날 중국은 “서양의 손을 떠났다.”

- 『용의 유전자』(에릭 두르슈미트 지음 / 세종서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