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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순득은 우이도의 홍어 장수였다. 그리고 우이도 홍어 장수 문순득을 세계로 이끈 것은 표류였다. 문순득은 1801년 12월 흑산 홍어를 싣고 영산포고 가던 중 돌풍을 만나 우리 역사상 가장 오랜 시간, 가장 긴 거리를 표류하게 된다. 흑산 홍어는 200여 년 전에도 식탁의 명물이었다.

홍어는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1~12월이 제철이다. 전라도에는 ‘날씨가 추우면 홍어 생각, 따뜻하면 굴비 생각’이라는 말이 있다. ‘혀와 입과 코와 눈과 모든 오감을 일깨워 흔들어버리는 맛의 혁명’ 이라는 삭힌 홍어의 맛은 혀가 아닌 몇 초의 시간차로 느끼는 것이라고 한다. 홍어는 또 흑산 홍어를 최고로 친다. 홍어는 겨울철이 다가오면 알을 낳기 위해 서북 해안에서 남서 해안으로 이동한다. 연중 내내 알을 낳지만 그중에서도 겨울철에 주로 알을 낳는데, 그 무렵 흑산도의 깊은 바다 속에서 지낸다. 그러니까 산란 준비 기간을 흑산도에서 보내는데, 이 시기의 암컷이 가장 육질이 좋고 영양분이 풍부하다.

삭힌 흑산 홍어는 영산포를 통해 나주 시장으로 팔려나갔다. 나주장은 조선 시대 지방 시장 중 큰 규모에 속했고, 이곳에서 삭힌 흑산 홍어 맛을 본 전라도 사람들은 그 맛에 빠져들었다. 홍어를 삭혀도 상하지 않는 이유는 요소 때문이다. 홍어나 상어의 살에는 포유동물의 오줌 성분인 요소가 특히 많은데, 삭힌 홍어의 톡 쏘는 맛은 상어와 홍어 등 연골 어류의 삼투압 조절에 필요한 요소와 TMAO 때문이다. 이 성분들이 육질에 부패 세균을 증식하기 전에 암모니아와 TMA로 분해되면서 코를 찌르는 냄새를 낸다. 그래서 홍어는 식중독 우려가 없고 오래될수록 독특한 맛이 깊어진다.

나주 영산포 사람들이 삭힌 흑산 홍어 맛을 즐기게 된 유래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산포에는 냉산이란 곳이 있다. 냉산은 내영산을 줄여서 부른 것으로, 영산현의 안쪽 마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의 영산포와는 다른 것으로, 내영산을 고려 시대에는 영산현이라 했다.

틈만 나면 우리나라 바다와 물을 침범해 말썽을 일으키던 왜구는 고려 말에 국가적 문제가 될 정도로 극성을 부렸다. 고려는 왜적이 침범해 오는 길목에 있는 섬에 군사와 주민들을 들여보내 왜구를 막게 했다. 그렇지만 이 정책을 실효를 거두지 못했고, 마침내 조정은 섬을 비우는 공도 정책을 시행했다. 이에 따라 서남해의 주요 섬들이 있던 관청이 육지로 옮겨지고 섬사람들도 강제로 뭍으로 옮아가야 했다.

당시 흑산도를 비롯한 서남해 섬의 대부분은 나주목 관할이었다. 이에 따라 흑산도 사람들의 강제 이주지는 나주에서 10리 떨어진 곳으로 정해졌는데, 이곳에 영산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이름은 고향인 흑산도 인근 영산도에서 따왔다고 전해진다. 영산현은 비옥한 경작지가 형성된 지역이었지만 사람들은 이곳에 뿌리 깊게 정착하지 못했다. 조상 때부터 대대로 살아오던 정든 땅과 바다를 고스란히 두고 강제로 쫓겨나듯 떠나온 고향을 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넓디넓은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이 갑자기 뭍에 올라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다는 일이 말처럼 쉬웠겠는가. 그래서 영산현 사람들이 조금만 감시가 소홀해졌다 싶으면 고향 흑산도를 향해 배를 몰았다, 그러고는 오랫동안 비워둔 집과 텃밭을 다시 가꾸기 시작했고, 고향 앞바다의 해산물을 건져 올리면서 고향에서의 삶을 다시 설계했다.

이와 함께 나라의 공도 정책도 점차 소홀해지면서 120여 년간 존속한 영산현은 결국 폐현이 되었다. 그러나 영산현 때문에 알려지기 시작한 삭힌 홍어는 영산강을 오가는 배에 실려 전라도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 잡아갔다.

영산강 유역이 있는 나주와 무안에서는 조선 시대 최초의 지방시장인 장시가 열렸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성종 1년(1470)에 장문이란 이름의 시포가 전라도에서 처음 열렸다는 기록이 나온다. 성종 4년 2월, 조정에서 화폐의 활용법 등을 논의하던 중 신숙주가 이렇게 아뢴다. “정인년(1470)에 흉년이 들었을 때 전라도 백성이 스스로 서로 모여 시포를 열고 장문이라 불렀는데, 사람들이 이것을 지키며 유지했습니다. 이는 바로 외방에 시포를 설치할 기회였으나, 호조에서 수령들에게 물으니 수령들이 득실을 살피지 않고서 전에 없던 일이라 하여 금지하기를 바랐으니, 실로 상습만을 쫓는 소견이었습니다. 다만 나주 목사 이영견은 금지하지 말기를 청했으나, 호조에서는 굳이 금지하며 천 년에나 한 번 있을 기회를 잃었으니 아까운 일이었습니다. 신이 전에도 이것을 아뢰었고 지금도 반복하여 생각해보니, 큰 의논을 세우는 자는 아래로 민심에 순응하면 그 성취가 쉽습니다. 남쪽 고을의 백성은 전에 이 때문에 스스로 시포를 보전했으므로 지금 그들이 바라는 것 또한 같을 것입니다. 이제 외방의 큰 고을과 백성이 번성한 곳에 시포를 설치하게 허기하되, 강제로 하지 말고 그들이 바라는 대로 하여 민심이 향하는 바를 지켜보면 실로 편리할 것입니다.”

이처럼 흉년이 들어 목숨을 연명할 길이 막막해지자 사람들은 각자 쓸 만한 것, 먹을거리 등을 들고 모여들어 서로 가져온 것들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시장의 형태로 발전했고, 이를 장문이라 했다. 즉 신숙주의 말은 이런 장문은 지방의 시장을 활성화해서 나라 경제를 좀더 살찌울 기회이기도 했는데 관리들이 무작정 막아버린 것은 민심을 잘 읽지 못한 처사였으며, 이제부터라도 지방의 장시를 활성화하되 민심이 원하는 방향으로 따라야 한다는 얘기였다. 이렇듯 나라에서는 지방의 장시를 달가워하지 않았고 금지했지만, 장신은 백성들의 요구에 따라 자연스럽게 퍼져나갔다.

영산강 유역의 나주와 무안에서 최초의 장시가 생겨난 이유는 그 지역이 장시가 열리기 위한 기본 조건을 두루 충족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세금으로 거둬들인 곡식을 서울로 실어 나르기 위해 임시로 보관하던 조창 제도가 있었는데, 나주에 이런 조창인 영산창이 있었다. 전라도의 곡식들은 대부분 이 영산창으로 들어왔다, 또 영산강 유역에는 기름진 나주평야가 있었다. 즉 영산강 유역은 풍부한 물산으로 장시의 배후지가 되었고 영산강 물길은 장삿배의 통로역할을 했다.

영산강은 그렇게 섬과 바다, 지역과 지역을 잇는 통상로가 되었다. 흑산도의 홍어도 이 영산강을 따라 배에 실려 영산포로 왔다. 흑산도에서 영산포까지 짧게는 열흘에서 열이틀이 걸렸다고 한다. 이렇게 여러 날 똥안 배에 실려 오는 사이, 홍어는 자연스럽게 삭혀졌다. 그걸 먹어보니 맛이 좋았고, 그때부터 삭힌 홍어를 먹기 시작한 것이다.

홍어가 전라도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흑산도 사람들은 직접 홍어를 잡아서 팔기도 했지만 상고선을 부리면서 시장에 실어다 팔아주는 중개상인에게 흥미를 맡기기도 했다. 우이도에 살던 문순득은 그런 중개상인중 하나였다.

지금도 나주 영산포에는 ‘홍어촌’이라는 마을이 있다. 홍어를 많이 취급한다고 해서 홍어촌 또는 홍애촌이라 불린다. 문순득이 홍어를 팔러 다니든 곳이 바로 이곳일 것이다. 영산현은 조선 초에 없어지고 이후 많은 사람이 이곳에 정착해서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그런 이주 물결은 일제강점기까지 이어졌고, 18세기 무렵부터 사람들은 이 마을을 홍어촌이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