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이스라엘의 왕 즈키르야는 통치 여섯 달만에 살룸에게 살해됐다. 살룸도 한 달 후 므나헤에게 암살됐다. 북이스라엘은 만신창이가 되어 갔다. 실제로 북이스라엘은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져 므나헴 시대에 이미 아시리아 왕에게 조공을 바치는 처지로 전락했다. “므나헴은 아시리아 임금에게 주려고, 모든 부자에게서 은을 쉰 세켈씩 거두었다.”

이런 상황을 주먹으로 가슴 치며 바라본 사람이 있었다. ‘페카’는 유대민족이 강대국에게 조공을 바치는 상황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므나헴에 이어 왕위에 오른 프카흐야를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 대 강경 아시리아 정책을 선포했다. 아시리아에 대항하기 위해선 남유다와의 연대가 최우선 과제였다. 그래서 남유다의 왕 ‘아하즈’에게 손을 내밀었다. “함께 힘을 모아 아시리아에 대항하자.”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NO"였다. 남유다의 왕 아하즈는 아시리아에 대항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오히려 친(親)아시리아 정책을 폈다.

북이스라엘 입장에서 보면 혹을 떼려다 붙인 꼴이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유다 왕국을 그대로 놔둘 경우, 아시리아와 유다로부터 동시에 협공을 받을 수 있었다. 결국 북이스라엘은 유다에 반(反)아시리아 성향의 새로운 왕을 세우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

이런 상황에서 남유다 왕국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아시리아에 원군을 청하는 것이었다. “아시리아 임금에게 사신들을 보내어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임금님의 종이며 아들입니다. 저를 공격하고 있는 이스라엘 임금의 손아귀에서 저를 구해주십시오.”

아시리아로선 호박이 넝쿨 채 굴러들어 온 셈이었다. 남유다 왕국의 원군 요청은 그렇지 않아도 이스라엘 침공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아시리아에게 전쟁의 명분을 만들어 준 꼴이 됐다. 신라의 요청을 받고 고구려를 침공한 당나라에 비유할 수 있다. 아시리아는 망설이지 않았다. 즉각 군사적 행동을 시작했다. 당시 고대 근동 최고의 군사력을 자랑하던 아시리아군은 순식간에 다마스쿠스를 장악하고, 그 여세를 몰아 북이스라엘 지역의 대부분을 점령했다. “아시리아 임금 티글랏 필에세르가 와서 이욘, 아벨 벳 마아카, 야노아, 케데스, 하초르, 길앗, 갈릴래아와 납탈리 전 지역을 점령하고, 사람들은 아시리아로 끌고 갔다.”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만 간신히 살아남아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다. 북이스라엘의 왕 ‘페카’는 이미 정치적 능력을 상실했다. 이런 페카를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인물이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왕 ‘호세아’(예언자 호세아와는 동명이인)였다.

호세아도 허리 굽히기를 싫어했던 인물이다. 겉으로는 아시리아에 조공을 바치는 척하며 기회를 엿보다가 마침내는 이집트에 도움을 요청, 아시리아에 대항한다. 아시리아는 더 이상 참지 않았다. 대군을 몰고 와서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숨통이었던 사마리아마저 함락시켰다. 그리고 북이스라엘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을 오늘날 이란과 이라크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아시리아 임금은 사마리아를 함락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아시리아로 끌고 가서 하라와 고잔 강가 하보르와 메디아의 성읍들에 이주시켰다.”

아시리아는 원래 다른 민족들을 정복한 후 ‘이주’라는 극단적 방법을 사용하지 않던 나라였다. 전쟁 초기에는 유대인들과 전투에서 이긴 후에도 친화정책을 우선시했다. 하지만 다른 민족과 달리 유대인들은 쉽게 아시리아에 동화되지 않았다. 끊임없이 봉기하고 반항했다. 제국을 유지해야 했던 아시리아 입장에서 보면 유대인들은 분명 다루기 힘든, 골칫덩이 민족이었을 것이다. 결국 아시리아는 ‘강제 이주’라는 극약 처방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유대인들이 떠난 도시에는 아라비아 사람들을 이주시켰다. “아시리아 임금은 바빌론과 쿠타와 아와와 하맛과 스파르와임에서 사람들을 데려다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대신하여 사마리아 성읍들에 살게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마리아를 차지하고 그 성읍들에서 살았다.”

엄청나고도 거대한 비극이 발생했다. 유대 민족의 북쪽 열 개 지파는 이제 역사와 신화 속으로 사라졌다. 언어와 신앙도 모두 사라졌다. 극적으로 사마리아에 남을 수 있었던 유대인들도 이주민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살며, 결혼을 하는 등의 과정을 통해 피가 섞였다.

유대인들의 혈통은 이제 유다 왕국만을 통해 이어졌다. 남유다 왕국의 유대인들이 보았을 때 북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은 더 이상 유대인이 아니었다. 유대인들의 인식 속에 북이스라엘의 사마리아인들은 더 이상 선민이 아니었다. 유대인들은 더 이상 사마리아인들과 함께 약속받은 땅을 공유할 수 없었다. 사마리아인들은 이방인들과 피가 섞인 사람들이었다. 예수 시대에 이르기까지 사마리아인들이 유대인들로부터 천대를 받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북이스라엘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제 유대인들의 나라는 남유다 왕국만이 남았다.

- 『유대인 이야기』 중에서
(우광호 지음 / 여백 / 388쪽 / 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