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우라상사? 사카이? 하라는 앞에 와서 명함을 내민 남자를 뚱하니 쳐다보았다. 이제 막 규동을 먹으려고 하는데, 앞자리에 와서 턱하니 앉더니 명함을 내밀고 싱긋 웃는 양복 차림의 남자를 쳐다보며 눈을 끔뻑거렸다.
“뭐요? 영업사원이요?”
“영업사원이 빈털터리 형사한테 무슨 팔아먹을 게 있겠습니까?”
“그럼?”
사카이가 일어나더니 자기 앞으로 나온 라면을 들고 다시 자리로 왔다. 젓가락을 들더니 라면을 거침없이 먹기 시작했다.
뭐 이런 녀석이 있어?
하라는 뭔가 자신에게 볼일이 있는 놈이라는 걸 알 만은 했다. 왜냐하면 사카이의 체구나 행동거지가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반인이 아니다. 야쿠자도 아니다. 이런 형의 인간은 거의 공무원이나 검찰 쪽 인간이다. 혹은 자위대이거나.
“그거 자위대 명함입니다.”
사카이가 젓가락으로 명함을 가리켰다. 뭐? 자위대가 이런 명함을 왜 가지고 다녀?
“정보군(情報群) 입니다.”
“정보군이 나한테 무슨 볼일이 있소?”
사카이가 웃었다.
“워낙 유명하신 경부님 아닙니까? 같이 만나 볼 사람이 좀 있어서요.”
“정보군에서?”
“아닙니다.”
사카이는 라면을 게걸스럽게 먹으면서 말했다.
“외국에서 온 손님들인데, 사람들 시선을 피해서 좀 뵙고 싶답니다.”
하라는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는 데에 열중했다. 그러면서 생각에 빠졌다. 형사 앞에서 이런 식으로 거짓말을 하거나 농담을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누군지 알고 왔다면 헛소리를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자기는 경시청에서 특경팀장이지만, 경부다. 그러니까 일반 부서로 간다면 팀장이 아니라 과장급이다.
하라는 물을 마시고, 트림을 하고, 물컵을 내려놓으면서 사카이를 바라보았다.
“무슨 볼일인지 알고나 만납시다.”

공원에는 쌀쌀한 바람이 불었다. 햇빛은 반짝였지만, 한겨울의 찬 기운을 밀어내지 못했다. 이제 꽃도 없고 나뭇잎도 없는 공원이었다.
하라와 사카이는 공원의 벤치에 나란히 앉아서 뜨거운 커피를 마셨다.
하라의 입장에서 외국의 수사기관이나 정보기관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상부에 보고 없이 가능한 경우여야 한다.
그러니까 충분한 설명을 들어야겠다.
“지금 수사하고 계시는 살인사건들 말입니다.”
“어떤 사건 말이오?”
“두 개의 사건이 있지 않습니까? 친삐라 애들 넷이 엽기적으로 죽은 사건과 그 아이들을 부리던 야쿠자 겐이치가 죽은 사건 말입니다.”
“그게 같은 사건이라고 누가 그럽디까?”
하라는 슬쩍 비껴갔지만 사카이는 눈을 반짝이며 히죽 웃었다.
“같은 사건이라는 걸 모를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런데요?”
“겐이치나 그 친삐라 놈들이나 다 같이 천황수호대 라는 단체 사람들이라는 말이지요.”
“그게 연결고리가 될 줄 알았는데, 전혀 이어지지 않았소.”
“천황수호대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사람은 만나보셨습니까?”
“다케다를 말하는 거라면 만나보았소.”
“그 사람에게서 들으신 진술이 있으십니까?”
“없소.”
사실이었다. 이 빌어먹을 인간이 입을 굳게 다물고 야쿠자들 일일 거라고 잡아뗐다. 그러고는 열심히 움직였다. 무언가를 찾아서 움직이는데, 그게 무언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사람이 누군가에게 입을 열었습니다.”
“뭐요?”
“하라 경부나 내가 아닌, 엉뚱한 고위층에 사실을 털어놓았어요. 덕분에 다케다는 우리가 보호하고 있고, 그 사실을 알고 나타난 외국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게 어디 사람들이오?”
“모사드입니다.”
“모사드?”
“예. 이스라엘의 해외 공작을 맡고 있는 정보기관 모사드가 찾아왔습니다.”
하라는 이게 무슨 일인가 해서 멍하니 사카이를 바라보았다. 사카이는 벤치에서 일어나더니 휴지통으로 가서 커피컵을 버리고 돌아섰다.
“자, 이제 그 사람들을 만나러 갑시다.”
“다케다는 어디 있소?”
하라가 묻자 사카이가 싱긋 웃었다.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2.

하라는 외국인들이 드나드는 샷바의 지하에 있는 술창고에 앉아 있었다. 하라 앞에는 자신을 마리라고 소개한 마흔은 되어 보이는(사실 서양 여자의 나이는 짐작하기 어렵지만) 여자가 앉아서 사진 한 장을 하라 앞에 내밀고 있었다.
“이 인물을 찾으러 이렇게 멀리 왔어요. 뭐든 솔직하게 말해드리죠. 우리는 이미 자위대의 정보군 부대원들과 손을 잡았으니까.”
하라는 마리의 말을 들으면서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하라씨는 이미 정보군과 같이 수사하기로 결정했으니까 믿고 정보를 드리죠.”
다부지고 잘생긴 얼굴이었다. 나이는 이십 대 후반 정도로 보이고 동양인이었다.
“다케다는 이 사람과 마주쳤고 얼굴을 똑똑히 기억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마주친 사람과 동일 인물인 거죠.”
하라는 마리를 바라보았다.
“우리?”
“정확하게 말해서 가자지구에서 희생된 우리 이스라엘의 샤바크 요원들이 마주친 자예요.”
“이게 누구요? 신원은 알아냈소?”
“강성하. 미국 이름 싸이언 강. 1981 년 미국 텍사스 출생. 8 년 전까지는 CIA의 히트맨이었어요.”
CIA의 히트맨이었다면, 중범죄자 중에서 형집행을 사면 받고 대신 CIA에서 암살 교육을 받은, 소위 말하는 ‘자발적자살자’들을 일컫는다.
이런 작자가 일본에 왜 들어왔다는 말인가.
“중요한 건 이 작자가 이미 죽은 자라는 거죠. CIA 기록상으로는 8 년 전의 공작 도중 사망했다고 나와 있어요.”
하라는 멍한 눈으로 마리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이 인물이 우리 일본에 와서 천황수호대의 일원들을 살해했다는 말이오?”
“우리는 그렇게 보고 있어요.”
“이유는 무엇이오?”
“여기서의 이유는 모르지만, 그에 대해서 몇 가지 정리한 게 있어요.”
마리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리고 길게 담배연기를 허공에 내뿜었다.
“정리하는 데 정말 오래 걸린 이야기예요.”
그녀의 얼굴에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우리 전 조직이 한 인간을 꼬박 10 개월을 쫓았네요.”

이상을 느낀 건 가자지구에서 작전이 막 끝나는 시점이었다. 대부분의 공공시설과 터널을 폭파하고, 당분간은 회복불능이 되도록 한 뒤에, 지상군이 철수하면서 이상은 감지되었다.
처음 샤바크의 요원들이 사라질 때에는 어느 작전에서나 흔히 있는 희생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요원들의 연락두절이 시간 간격으로 보아도 그렇고, 그 숫자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빨랐다.
블랙이고 화이트고 할 것 없이 빠른 속도로 연락이 두절되기 시작했다. 가자지구 내의 모든 팀장들이 요원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하나둘씩 연락 두절되었던 요원들이 나타났다. 물론 살아서 나타난 자는 없었다.
발견되는 요원들의 상태를 보면서 정보국 내의 모두가 충격을 받았다.
상태가 온전하게 죽은 요원들은 극소수였다. 대부분이 잔인하게 고문을 받은 흔적을 가지고 있었다. 손톱이 꺾여 있거나, 이빨이 빠져 있거나, 심지어는 귀와 코가 잘린 요원들도 있었다.
그로 인해 어떻게 그렇게 빠른 시간 내에 많은 요원들이 당할 수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상대들은(그게 몇 명인지는 모르지만) 샤바크의 요원들을 파악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 처음 단 하나로 시작해서 고문으로 하나, 혹은 둘을 더 알아내고 다시 또 알아내면서 순식간에 삼십여 명의 요원들을 박살을 냈던 것이다.
그로 인해서 가자지구 내의 샤바크는 당분간 공작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버렸다. 그래서 모사드가 가자지구 안으로 투입되었고, 마리가 추격팀의 팀장으로 가자지구에 들어갔다.
마리는 본래 모사드에서 체이서로 명성을 떨치던 요원이었다. 그녀는 간부가 되어서 일선을 떠났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추격자로서는 으뜸이었다.
그녀는 먼저 상대가 한 사람이라는 걸 간파했다. 다들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했지만, 그녀는 확신했다.
어느 팀이 움직이면 그게 몇 사람이든 여러 사람이라는 흔적이 남는다. 공작하는 방식이 다르다든가, 혹은 남겨놓은 발자국이라도 여럿이라고 말해준다. 하다못해 고문의 방식이나 살인의 방식도 다르게 마련이다.
그런데 모든 요원들이 한결같이 같은 방식과 차례로 당했다. 엄청나게 뛰어난 솜씨였지만(그래서 정신없이 당했지만) 흔적은 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준다.
그 순간에, 마리는 상대를 충분히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뛰어나도 상대는 단 한 명이고, 비좁고 눈에 훤히 보이는 가자지구 안이다. 삼면은 콘크리이트로 막혀 있고, 한 면은 해안이지만 이스라엘군으로 완벽하게 봉쇄된 항구다.
자신 있게 포위망을 좁혀갔다. 경찰과 군과 경비대까지 모두 동원하고, 아만과 샤바크와 모사드를 총 집결 시켜서 추격했다.
그렇게 한 달이나 추격해서 겨우 그의 사진 하나를 손에 넣었다. 상대가 유일하게 실수해서 폐쇄회로에 찍힌 희미한 동영상 하나를 손에 넣고 나서야, 이미 그는 가자지구를 빠져나갔다는 걸 깨달았다.
모사드는 절대 복수를 멈추지 않는 조직이다. 마리는 이제는 국외로 시선을 돌려서 전 세계로 퍼져 있는 정보력을 동원해 상대를 추격했다.
동영상의 인물이 누구인가를 알아내는 게 첫 번째 목적이고, 알아낸 후에는 어디로 갔는가를 찾는 게 두 번째 목적이다.
모사드의 요원들은 두 가지로 나뉜다. 현재 활동하는 요원과, 현재는 아니지만 언제라도 요원으로 활동하게 할 수 있는 잠재적 요원이다.
그리고 그 후로 9 개월간을 전 세계의 요원들이 가동되어서 알아낸 것은 그의 오래전 신분이었다. 이미 사망했다고 기록된 미국 CIA 요원 신분.
그 후로 그가 어떻게 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당연히 기록이 없다. 사망한 요원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을 리 없으니까.
그러나 세계 최고의 정보력으로 결국 그 인물이 바로 여기 도쿄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순전히 도쿄의 잠재적 요원 덕분이었다.
다케다가 만난 자위대의 정보군에는 고위간부들이나 핵심요원들이, 다른 신분으로는 모사드의 잠재적 요원이었던 것이다.

“꼭 그자라고 확신할 수 있소?”
하라의 질문에 마리가 십여 장의 몽타주를 내밀었다.
“싸이언 강이 변할 수 있는 모든 모습을 컴퓨터로 이백여 장 만들었어요. 그리고 사방에 뿌렸죠. 그중에 열 장이 추려져서 남았어요. 그러니까 본 적이 있다는 사람들이 셋 이상 겹친 경우에 체크한 거죠.”
마리는 다시 처음에 보여준 사진을 가리켰다.
“하지만 본모습은 이거예요. 다케다씨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죠.”
“그렇다면 이 작자가 대체 어떻게 죽었다가 어떻게 부활한 거요?”
“그건 모르죠. 잡아서 알아보려고요. 꼭 산 채로 잡아서 손톱도 뽑고 발톱도 뽑으면서 알아보려고요.”
마리의 눈이 표독스러워졌다.
“아, 이빨도 뽑을 거예요.”
하라는 마리의 귀여워 보이는 동그란 얼굴을 올려다보면서 등골이 오싹해졌다. 저렇게 귀여운 얼굴을 하고 어떻게 저런 잔인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걸까.



3.

다케다는 어두운 밀실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서 커다란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은 아마도 밖에서는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매직미러일 것이었다. 자위대의 정보군이 가지고 있는 안전가옥에 갇혀서 어찌 될지도 모르는 자기 앞날을 생각하고 있자니,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모든 일은 순식간에 선택의 여지도 없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멋지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의 중요한 협력자들이 청탁한 일이기에 당연히 해주어야 했고, 이제까지처럼 충분히 해줄 만한 일이었다.
한국에서는 이미 죽어서 장례까지 치른 인물을 비밀리에 밀항시킬 터이니 안전하게 보호하라고 했다. 자신은 그런 면에서 야쿠자 조직이나 우익조직들에게 충분히 영향력도 있고 안전하게 보호할 능력도 있었다.
다케다는 당연히 김중식이라는 범죄자를 완벽하게 보호하고 있었다.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누구나 알았지만, 조직 내의 어느 누구도 그게 위험한 일이라고는 판단하지 않았다.
김중식이라는 이름 석 자는 전 세계에 알려진 이름이다. 그러나 그를 실제로 마주쳐도 알 만한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는 처음에 성형을 하느냐 마느냐 했지만, 오히려 그게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 그냥 염색을 하고 수염을 기르는 정도로 마무리했다.
사실 다케다가 몸을 담고 있는 단체의 하부조직에서는 아무도 그에 대해서 묻지도 않았고 알려고도 들지 않았다. 그는 돈을 잘 썼고, 그의 돈은 하부 조직들에게도 위력을 발휘해서 누구나 그를 칙사처럼 대접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알 만한 친구들은 다 아는 인물이 되어버렸다. 원인은 김중식에게 있었다. 그는 자신이 거물로 대접 받기를 원했다. 거물로 살아왔기 때문에 몸에 밴 습성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몇몇은 그의 내력을 알게 되었고, 그게 화근이 되었다. 가장 화근이 된 것은 하부조직에서 김중식을 담당하고 있는 게 바로 다케다 자신이라는 걸 알고 있는 작자들이 있다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어느 날, 바로 그 이상한 괴물이 자신을 인지하고 찾아왔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를 한국으로 빨리 돌려보내지 않으면 자신의 가족은 이미 저세상 사람일 것이다.
흔히 하는 말로, 선수는 선수를 알아본다고 하지 않던가.
그가 누구라는 것을 안 순간에, 다케다는 이미 저항할 마음을 접어버렸다. 만일 그 즉시 상부에 알렸다가는 아마 자신을 비롯해서 온 가족이 지금쯤 가족묘지에 합장되어 있을 것이다.
그는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즉각적으로 김중식을 한국으로 돌려보내버렸다. 그 결과로 자신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지만, 어찌 보면 그 이후에 일을 잘 처리하면 책임을 모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번 사태에 관해서 제일 궁금한 점은 어째서 한국의 조력자들은 일찌감치 김중식을 제거하라고 하지 않고 보호하라고 했을까 하는 점이다. 그렇게 골 아픈 인물이라면 깨끗이 제거하면 그만이 아니었나 싶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여하튼 사건은 일파만파로 번져나갔다.
바보 같은 김중식이 한국에 돌아가서 느닷없이 한국의 조력자들에게 연락을 한 것이다. 자기로서는 약속이 틀리지 않냐고 항의를 했겠지만, 그게 한국의 조력자들을 화들짝 놀라게 해버렸다.
그들은 이제 와서 김중식을 제거하려고 했는데, 그게 또 실패해버렸다.
다케다가 생각하기로, 그건 당연한 결과였다. 어느 누구도 이제 와서는 김중식을 건드리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려면 한국의 엉성한 깡패들 동원해서는 절대 불가능하다.
그들이 김중식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아주 전문적인 킬러를 여럿 보내서 처리하든가, 아니면 정보기관 정도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일이다.
다케다는 어쩔 수 없이 정보군에 모든 걸 털어놓았다. 아마 털어놓으면 그들도 자신이 왜 그랬는가를 이해하리라 생각했다. 상대가 누구인가를 말한 순간에, 정말로 정보군의 간부들은 자신을 이해했다. 그래서 죽이지 않고 오히려 보호하고 있는 중이다.
상대에 대해서는 달리 말한 게 없다. 그저 우리도 일을 청탁한 적이 있는 자라고 말했을 뿐이다.
상대는 ‘프리랜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