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날이 맑았다. 바람이 약간 차가운 걸 빼면, 말 그대로 화창한 봄날이었다. 두진은 창밖을 바라보면서 상념에 젖었다. 그동안의 수사 결과를 토대로 할 것도 없었다.
프리랜서가 일부러 남겨준 심문서(고문의 결과로 기록된 서류를 심문서라고 볼 수 있다면)를 보면 모든 게 설계도를 들여다보듯이 정확하게 엮여 있었다.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거대한 정재계의 커넥션이 존재함을 암시하는 설계도였다. 돈과 권력의 유착에 외세가 더해진 것 같았다. 그렇지만, 두진이 보기에 자기와 똑같이 프리랜서 역시 그 상층부는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프리랜서는 상층부를 향해서 차근차근 올라가고 있는 것 같았다. 만일 프리랜서가 선전포고를 한 대로 차근차근 위로 올라가게 된다면, 그동안 일어날 피해는 눈덩이가 될 것이었다.
어느 방향으로 수사를 계속해야 할지 모르지만, 이런 사건에서 중요한 건 검거만이 아니라, 사건을 막는 것도 중요하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상대가 아예 자신을 드러내놓고 이렇게 정면으로 도전해오는 상황이라면 난감한 것은 희생을 줄일 수 없다는 거다.
가장 큰 문제는 내부에 있다. 세상이 뒤집어질 만한 엄청난 비리가 숨겨져 있기 때문에, 마음대로 수사를 할 수도 없고, 마음껏 인력을 동원할 수 없다는 점이다.
공개수사는 물 건너갔다. 어디에도 이런 사실은 공표되지 않을 것이다.
사무실 직원이 부장검사실의 호출을 알렸다. 그동안 정이 든 부하직원들이지만, 이제는 아니다. 다들 두진의 행각에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검사인 두진보다, 조직을 더 믿고 따랐다.
사무실을 나서서 복도를 걸으면서 이상하게 쳐다보는 동료들을 향해 짐짓 웃어보였다. 누구도 말을 걸지 않았다. 사실 검찰청 전체가 비상이 걸린 상태여서 다들 싱숭생숭하고 바쁘기도 하다. 그리고 그 정점에 두진이 서 있었다. 좋은 쪽이 아니라, 나쁜 쪽으로.

“감찰반은 내가 막았네.”
부장검사는 서류철을 건네면서 말했다.
“다시 이런 일로 문제가 일어나지 않게 하게.”
“뭔데요?”
두진은 웃음을 참으면서 서류를 들췄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하늘 올려다봐서 쪽팔릴 만한 일은 한 적이 없다.
“보고 이야기 하게.”
서류를 들췄다. 순간, 너무 황당했다. 너무 오래 되어서 기억에 있는 게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너무 특별나서 잊은 적이 없다.
이걸 어떻게 알았을까. 무려 5, 6 년이 지난 일이다. 부산 바닥도 아니고, 연수원에 갔다가 벌어진 일이다. 오랜만에 연수원 동기들 중 하나가 신나게 술 한 번 마시자고 해서, 교육을 신청했다. 사실은 받지 않아도 되는 교육이지만, 동기들이 의기투합해서 다섯 명이 작당을 하고 교육을 신청했다.
연수원에서 저녁을 먹고, 다섯이 몰려나갔다. 전국적으로 유명하다고 하는 나이트클럽에 가서 각자가 준비한 현찰을 가지고 폭탄주를 만들어 먹었다.
거기까지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그런데 두진이 화장실을 갔다가 이상한 풍경을 보게 되었다. 사내놈 둘이서 어느 여자를 쥐 잡듯이 잡고 있었다. 그냥 지나치면 좋았을 것을, 그럴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다가 시비가 붙었다. 동네 양아치들은 거리에서는 꼭 자기들이 양아치가 아니라고 우긴다. 곧 죽어도 조직원이라고 알아주기를 바란다. 물론, 잡혀 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스스로 조직원이 아니라 양아치라고 우긴다.
두 녀석이 그랬다. 개폼을 잡고 조직원 흉내를 냈다. 내 신분을 밝힐 수는 없었다. 부킹한 여자 끼고 술 마시면서 그럴듯하게 그저그런 회사의 직원 흉내를 내다가 갑자기 검사가 될 수는 없다.
시비가 붙고 술김에 한 방 내질렀다. 여자를 괴롭히는 놈은 그래도 된다. 고등학교 시절에 복싱을 하던 몸이다. 제대로 턱에 명중했다.
그게 문제가 커져서 우르르 종업원들이 몰려들었다. 곧 경찰도 왔다. 동기들이 알고 쫓아왔다. 영락없이 지구대로 가야 했다. 동기들도 어쩌지 못하고 그냥 보기만 했다.
경찰서에 가서도 버텼다. 여자도 같이 와 있었는데, 알고 보니 여자는 일해주기로 하고 선금을 땡긴 다음, 그냥 달아난 술집 여자애였다.
양아치들이 여자들을 옭아매는 방법은 기묘하고도 더럽다. 선불을 그냥 주면 매매춘을 시키다가 걸렸을 때, 억지로 시켰다고 할까 봐 머리를 쓴다. 자기들이 돈을 주지 않고 사채업자를 내세우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들은 여자한테 돈을 주고 얽어맨 적이 없는 거다.
동기들이 왔다. 그중 하나가 지구대장을 불러내서 신분을 밝히고 합의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당연히 합의가 가능하게 되었다. 검사라는 걸 알자, 양아치들은 치료비를 받고 곱게 물러났다.
술이 웬수인 건 맞다. 거기서 마무리가 되었어야 하는데, 술김에 분을 삭이지 못했다. 여자를 양아치들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양아치들도 개처럼 주인이 있다. 알고 보면 불쌍한 인생들이다. 양아치들의 주인을 지구대로 불러서 만났다. 여자를 또 건드리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박살을 내겠다고 협박을 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여자를 상관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지구대를 나와서 헤어졌다. 그게 전부다.
그런데 그게 눈앞에 마치 비리인 양 나타나 있었다. 대체 누가 이런 걸 조사해서 협박을 하는 건지 모르지만, 여자와 어떤 사이인가까지 파고들었다.
서류를 덮고 부장검사를 바라보았다.
“이게 징계사유입니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네.”
“징계 먹이십시오.”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장검사가 굳은 얼굴로 노려보았다. 두진은 태연히 고개를 숙였다.
“바쁜 일이 있어서 그만 가야겠습니다.”
“자리 옮기는 거 알고 있나?”
“예. 옮기라면 옮겨야지요.”
두진은 태연히 부장검사실을 나왔지만, 속에서 불길이 솟구쳐 올랐다. 사건에서 손을 떼는 정도가 아니라, 자리를 옮겨야 한다는 말이다.
피식.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복도를 허허 웃으면서 걸었다. 지나가면서 인사하던 직원들이 의아해서 쳐다본다. 진짜 웃기는 놈들. 하나같이 웃기는 놈들뿐이구나. 화창한 봄날이 아까웠다.



2.

팽반장과 진구는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다. 팀 전체가 특수수사본부에 파견되어 나오자마자, 광탄에서부터 반경 수십 키로의 모든 CCTV를 검사하는 임무가 떨어졌다. CCTV에 나타나는 모든 인물을 체크하고 기관에서 나온 사진과 비교하면서 용의자를 찾는 일이었다.
특수수사본부는 검찰과 국가정보원과 경찰이 합동으로 차렸고, 서울고등검찰청의 검사장이 총지휘를 맡았다.
그 아래로 각기 기관도 다르고 소속도 다른 수사팀들이 서로 연계되어서 각자의 지휘자 아래, 맡은 대로 수사를 했다. 그리고 그 수사 결과를 모으고 다시 분배하는 과정은 검사장이 각 지휘자들에게 하달했다.
검사들은 공안부 소속이었고, 국가정보원은 대테러팀, 경찰에서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차출되어서 팀을 이루고 있었다.
그 가운데 팽반장과 진구는 지역 경찰로서, 지역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일선 경찰들과 연계해서 수사하는 역할로 나와 있었다.
그렇지만 팽반장도 진구도, 자기들이 맡고 있는 상황 이외에 어떤 상황도 전달받지 못했다. 그저 지시하는 사항만 따를 뿐이었다. 회의를 마치고 오는 총경은 절대 회의에서 나온 정보나 수사진행 상황에 대해서는 말하는 바가 없었다.
물론, 매스컴이 떠들기 시작했으므로, 매일 총경이 나서서 브리핑을 해야 했다. 그래도 여전히 수사 중이고, 사회에 불만을 가진 세력이 아닌가 싶으며, 수사 진행 중이라 자세한 사항을 말할 수 없다는 말만 사흘째 반복했다.
CCTV에서 범인을 특정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쉬웠다. 워낙 한가한 도로이기 때문에 버스를 제외하고는 간간이 승용차가 지나다녔다. 그 승용차의 차적을 조사해보면 대부분이 근처에 서적창고를 가진 사람이거나, 책을 포장하는 박스 회사의 직원들이었다. 간혹 새로운 차량이 나타나면 영락없이 성묘를 간 사람들이다.
차적을 조회해서 도난차량으로 밝혀진 단 한 대의 봉고차가 있었다. 그 봉고차는 두 번을 지나갔고, 언제나 사건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야산의 묘지 입구에 차를 대어놓고 있다가 나타났다. 아쉬운 것은 묘지가 워낙 작은 야산으로 이루어진 곳이라, CCTV가 없다는 점이었다.
차량이 도난을 당한 시점은 사건이 일어나기 불과 이틀 전으로, 도난신고가 접수 된 것은 하루 전이었다. 그러니까 훔친 날 밤 사이에 폭발물을 설치하고 사라진 것이고, 도난차량은 사건 2 일 후에 일산 시내에서 발견되었다.
도난차량이 움직인 동선을 다시 CCTV로 추적한 결과, 그 도난차량이 범인이 이용한 차량인 게 확실해졌다. 폭발은 도난차량이 묘지로 사라진 마지막 모습이 찍히고 20 시간 만에 일어났다.
사건 현장을 감식한 결과, 다량의 강력한 인화물질이 각 창고마다 흘러들어 있었고, 창고마다 강력한 C4를 이용한 시한폭탄이 장치되어 있었다. 탁상시계를 연결해서 엉성하게 만들어진 사제 폭탄이었다.
그러나 발견된 차량에서는 지문도 나오지 않았고, 폭발물을 다룬 흔적도 나오지 않았다. 네비게이션에서도 어떤 기록이 나오지 않았다.
CCTV를 전부 뒤졌지만, 범인은 CCTV로 특정할 수 없게 움직였다. 거리의 CCTV를 아주 잘 아는 범인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게다가 폭약을 다루고, 폭탄을 만드는 솜씨로 보아서는 고도의 훈련을 받은 전문가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
탐문수사가 시작되었다. 도난차량에서 내리거나 탄 인물을 본 적이 있는 목격자를 찾아다녔다. 그리고 묘지 근처나 창고 근처에서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를, 주변을 다니면서 탐문했다.
목격자는 없었다. 성묘철도 아니고, 개인적으로 고인의 기일에 성묘를 오는 사람들도 없었던 것 같다. 주변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역시, 차량은 보았지만, 차량에 탔던 사람은 보지 못했다고 했다.
이번에는 탁상시계를 판 매장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폭약을 도난당한 채석장이나 광산을 수사했다. 어느 곳도 그런 사실이 없다고 했다. 범인이 휘발성이 강한 시너를 사용했으므로 그 부분을 수사했다. 다량으로 산 곳을 찾는 게 아니라, 아예 시너를 취급하는 모든 매장들을 뒤지고 다녔다.
어느 곳에서도 범인의 흔적은 특정되지 않았다. 수사는 지리하게 질질 시간을 끌고 있었다. 팽반장과 진구역시 그 가운데 섞여서 분주하면서도 지치도록 오래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지친 몸을 이끌고 저녁을 먹으려고 특수반이 차려진 경찰서를 나서는데, 전화가 왔다. 오랫동안 보지 못하고 산 고등학교 동창 대운이었다.
“어? 웬일이냐?”
“일산 온 김에 전화 한 번 해봤다.”
“일산 왔어?”
“그래. 볼일이 있어서 출장 왔다가 네 생각나서 어떻게 사나 하고 전화 했다.”
“나야 정신없지, 뉴스 안 보나?”
“부산도 마찬가지야. 인마. 그래서 시간 없어?”
“아냐. 시간 있어. 일산 어딘데?”
“내가 여기 잘 모르는데, 너랑 작년에 같이 곱창 먹었던 집이 길 건너에 보인다.”
“웨스턴돔 건너 먹자골목이구만. 거기 들어가서 있어. 코앞이다.”
“오케이. 기다릴게.”

곱창집은 아직 손님이 많지 않아서 한가했다. 담배를 피우느라 밖에 내어놓은 의자에 앉아서 곱창에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어릴 적 이야기 끝에 대운이 물었다.
“그나저나 범인이 누군지는 알지?”
“누군지 알다니?”
진구는 무슨 소리인가 해서 대운을 쳐다보았다. 대운이 히죽 웃었다.
“그냥 내가 수사하는 부산에서 일어난 사건하고 비슷해서 말이다.”
“부산에서 일어난 강도사건 말이냐?”
“그래. 수법이 비슷하다.”
“뭐가 비슷해? 여긴 완전히 공안사건이야. 거기는 강도사건 아니었어?”
대운이 고개를 갸웃 했다.
“그래? 지금도 수사반에서 범인을 몰라?”
“모르니까 이렇게 헤매고 있지.”
“북쪽 놈들 소행은 아니래?”
“아닌가 봐.”
“그래?”
대운의 눈이 반짝했다.
“아냐, 인마. 그럼 벌써 군에서도 대응하고 그랬지. 아닌가 보더라. 기관에서 나온 사람들도 아니라고 하니까.”
“그럼 뭐야?”
“모르니까 수사하지. 알면 수사하냐? 체포하러 다니지.”
“그건 그렇지.”
대운은 주머니에서 사진 하나를 꺼냈다.
“그런데 말이야. 아무래도 내가 감이 이상해. 우리 부산 쪽은 사채업자하고 경호원들 다 죽이고 집에 불 지른 인간의 사진을 확보했거든.”
“그래? 그런데도 못 잡아?”
진구가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알고도 못 잡아. 그리고 철저하게 비밀수사야. 공개수사로 전환될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대운이 진구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아, 그리고 형식이 온다고 했다.”
“형식이?”
진구가 눈쌀을 찌푸렸다. 형식은 똑같은 고등학교 동창이지만 기자다. 그런데 인터넷판만 내는 진보매체 쪽 기자여서 만나면 껄끄럽다. 항상 무언가 잘못된 걸 찾아다니는 기자여서 자신에게도 무언가를 캐려고 달라붙는 통에 피하는 친구다.
“그래. 요즘 자주 만나지도 못했다면서?”
“그 자식…”
“야야. 서로 직업이 상충해서 그런 건데 뭘 감정을 갖냐?”
“작년에 퇴폐업소 상황 꼬치꼬치 묻고는 그걸로 기사 쓴 거 알아? 덕분에 내가…”
“미안하다. 인마.”
갑자기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뚱보 하나가 둘 사이에 털썩 끼어들었다. 진구는 안 반가운 인상이었지만, 대운이 어깨를 치면서 반가워했다.
“오랜만이다. 배가 더 나왔네?”
형식은 배를 쓰다듬으면서 웃었다.
“웬일로 서울까지 올라왔냐?”
“다른 일로 왔다가 오랜만에 셋이 만나서 한잔하려고 연락했지.”
형식이 진구를 돌아보았다.
“아는 체 좀 해라. 인마. 원수졌냐?”
진구가 하는 수 없이 피식 웃었다.
“자자. 이렇게 모였는데, 기분 풀고 마시자. 오늘은 좀 시원하게 마셔보자.”



3.

아침 출근시간에 모든 사람들이 기겁을 할 뉴스가 터졌다.‘뉴데이넷뉴스’라는 인터넷뉴스에 뜬 기사였고, 단독보도였지만, 기사에 뜬 단 두 장의 사진으로 인해 세상은 뒤집어졌다.
한 장은 김중식의 모습이었고, 다른 한 장은 강성하의 사진이었다. 두 사진에는 사진이 찍힌 것이 아니라, 동영상임을 암시하듯이 러닝타임이 표시되어 있었다.
조회수가 최고였고, 댓글이 끝없이 이어졌다. 기사가 카피되어 나가면서 인터넷은 온통 그 기사로 도배가 되기 시작했다. 공중파마저도 그 기사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기사 내용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동안 일어났던 모든 사건들이 한 줄로 이어졌다. 그게 모두 어떤 인물이 일으킨 테러였고, 그의 별명이 프리랜서라는 것까지 밝혔다.
그 내용으로도 뒤집어질 일인데, 한 술 더 떠서 김중식이 살아 있고, 김중식이 그와 함께 국내에서 돌아다니고 있다는 내용은 세상을 패닉에 빠져들게 했다.
검찰에서는 그런 사실을 비밀리에 수사하고 있었고, 아직 두 사람을 검거하지 못해서 확인할 수 없으므로 발표를 미루고 있을 뿐이라고까지 했다.
검찰로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대검찰청으로도 몰려들고, 의정부지청과 부상지청으로도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수사본부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뿐 아니라, 경찰과 청와대에까지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오전이 지나도록 청와대는 공식 반응이 전혀 없었고, 오후 들어서는 검찰의 공식 수사브리핑이 있을 예정이라고 공표되었다. 오전 내내 사람들은 일손을 놓고 그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다.

시끌시끌한 자갈치 시장의 횟집 한구석에 두진과 영란과 대운이 모여 앉아 말없이 소주를 마셨다. 공무원이 낮술을 먹는 게 정상은 아니지만, 세 사람은 마시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세 사람은 마치 분신자살이라도 하는 듯한 감정이었다. 이제부터 들이닥칠 자신들의 운명에 대해서 전혀 점쳐지지 않았다. 물론 셋 모두가 이제 공무원 신분이 아니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다른 무엇인가가 더 심하게 자신들에게 닥칠 수 있다는 걸 예감했다.
주변은 온통 뉴스 소리와 서로 떠들고 싸우는 소리로 가득했다. 저건 음모설이다. 그럴 리가 없다. 정부가 썩었다, 틀림없이 정부와 연관이 있다, 없다, 침을 튀기면서 좌우로 나뉘어서 싸우느라 난리들이었다.
“너희들은 빼고 싶었는데… 일이 이렇게 되어서 어쩌냐?”
두진의 말에 대운이 싱긋이 웃었다.
“제가 자청했는데요, 뭐.”
“어차피 못 빠져요. 우리 셋이 사무실 가졌던 걸 모를 리가 없잖아요? 기관에서 우리만이 아니라, 마리하고 하라도 감시했던데…”
영란도 태연히 소주잔을 들고 말했다.
“그래도 멋지게 해냈잖아요?”
“그랬나?”
두진은 소주를 들이켰다.
“아직 다는 아니지. 다 밝히지 않았으니까. 누가 연루 되었는지는 알리지 않았으니까 이제 시작이라고 봐야지.”
텔레비전에서 검찰의 발표가 시작되었다. 시끄럽던 주변이 일시에 조용해졌다. 세 사람도 조용히 텔레비전을 바라보았다.
대변인이 나와서 검찰의 수사과정을 밝혔다.
‘그동안 우리 검찰에서는 항간에 떠도는 소문을 비밀리에 수사했으나, 아직 확실하게 밝혀진 것이 없고, 인터넷에 올려진 내용은 검찰 내부에서도 아직 확실하게 확인한 팩트가 아니므로 현재로서는 정확하다 말씀 드릴 수가 없습니다. 또한, 확실하지 않은 내용을 가지고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유언비어를 생산하고 퍼뜨리는 행위는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검찰에서는 곧 모든 것을 확실하게 수사해서 그 결과를 발표할 것입니다.’
대변인은 더 이상의 질문도 받지 않고 그냥 물러나버렸다. 사람들이 다시 웅성거렸다.
세 사람은 기가 막혀서 멍하니 텔레비전을 쳐다보았다.

성하는 어둠 속에 앉아 텔레비전을 바라보았다. 그의 차갑게 굳은 얼굴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은 두 눈동자뿐이었다. 분노에 찬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