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운은 비가 오락가락하는 남포동 거리를 바쁘게 걸어갔다. 핸드폰으로 두진과 통화를 하느라 가끔씩 사람들과 부딪칠 뻔했다.
“전국에 수배령을 내려주십시오. 도난이 확실합니다. 중앙동에 있는 수출입 리스 회사에서 렌트한 차인데, CCTV에 장림공단에서 나가면서 찍힌 차량과 같은 차량입니다. 정확하게 우리가 현장을 습격하기 하루에서 반나절 전에 도난을 당한 것 같습니다. 도난 신고는 그날 저녁에 했고요.”
‘수배 내릴 테니까 어서 들어와.’
“창원으로요?”
‘갑자기 웬 창원이야? 사무실로 오라는 말이야. 나도 거기로 가고 있다.’
“아, 예.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택시를 잡았다. 차는 가지고 움직이지 않는다. 두진과 영란과 함께 그렇게 정했다. 수사비로는 택시비가 충당되기 어렵지만, 사비를 털어서라도 그렇게 하기로 했다.
택시를 타고 바쁘게 영란의 아파트로 가자, 두진이 먼저 와서 영란과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영란은 밤을 새운 듯 초췌한 모습이었다.
“어서 와. 차량 찾았다. 엄청 쉽게 찾았다.”
“그게 무슨…?”
수배령 내리고 택시 탄 사이에 수배한 차량을 찾았다고 말하는 건가?
“이미 차량이 경찰에 수배되어 있었는데, 서울 근교의 공사장에서 발견되었어요.”
영란이 노트북을 돌려서 보여주었다. 역시 특장차였다. 이걸 어째서 미리 생각하지 못했을까. 미리 생각했더라면 지방도로나 고속도로에서 충분히 잡아챌 수 있었는데 말이다.
“내부에 뭐 없다고 하죠?”
“전혀. 그런 걸 남길 리가 없잖아.”
“우리한테는 남겨주었잖아요?”
“아무한테나 주지는 않지.”
두진은 자신도 모르게 코웃음을 쳤다. 프리랜서가 게임 상대로 자신을 선택했다는 게 자존심 상해야 할 일인지, 아니면 고마워해야 할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사 준비하자.”
“차량 찾아서요?”
“아냐. 그게 아니라, 새로운 게 있다.”
두진이 영란을 가리켰다. 영란이 CCTV의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역시 프리랜서한테도 한계가 있었어요. 도난차량이 이틀 전에 서울 시내에서 찍혔어요. 그다음에 가져다 버렸지만, 교통통제시스템에 잡힌 거죠.”
“김중식을 눈에 뜨이지 않게 운반하려다 보니까 어쩔 수가 없었겠지. 그러니까 수사반경이 아주 좁아진 거야.”
두진이 지도를 펼쳤다.
“교통통제시스템 말고도 CCTV 여섯 대에 잡혔어. 그 방향이 을지로야.”
“을지로에서 잡혔어요?”
“을지로라고 하면 일단 충무로를 생각해야 하는 거 아냐? 거긴 이제는 영업을 안 하는 인쇄소들이 많아. 빈 건물들이 많다는 말이지.”
“그 정도 나왔으면 기관이나 경찰에서 뒤지고 있겠지요?”
“아닌데?”
두진이 고개를 흔들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어디서도 수색작업을 하지 않고 있다. 이게 무슨 현상인지 모르지만 말이야.”
“그럼 우리 셋이 뒤집니까?”
“어차피 협조를 받아서 대규모로 움직이면 잡힐 리가 없잖아?”
두진의 말에 대운이 뚱한 표정이 되었다.
“검사님…”
“뭐? 왜?”
“총 쏘실 줄 아십니까?”
“배웠거든? 그리고 인마, 내가 대한민국 육군 장교 출신이야.”
대운이 황당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영란이 옆에서 거들었다.
“짐 안 싸고 뭐해요? 서둘러요. 세시 반 비행기 예약해두었어요.”

김포공항에 도착해서 곧장 종로경찰서의 사무실 하나에 자리를 잡고 수사반을 꾸렸다. 지역 특성을 알기 위해 형사 몇 사람에게 자문을 구하고, 지구대에도 협조를 구했다. 빈 건물들과 폐업하거나 휴업한 공구상과 인쇄소들에 대해서 파악하기 시작했다.
쉽게 파악되지 않는 면이 있는 것은 개점휴업 상태로 있는 인쇄소들이 많고 종이 창고들도 많아서 일일이 파악하고 다니기 전에는 알 수가 없었다.
소리 없이 주변을 잠식해 들어가기로 했다. 탐문을 조심하고 평소처럼 순찰을 돌면서 건물들을 하나씩 체크하기로 했다. 그중에서도 큰 건물들을 우선순위로 찾기로 했다.
복잡한 골목들이고, 반경이 넓었지만 하루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동안 두진과 대운은 초조하게 사무실에 앉아서 특정 건물들에 대한 정보를 기다렸다.



2.

RM은 PSG-1로 만족해야 했다. 한국의 기관에서 지급해준 것이 소음기 달린 권총 하나와 PSG-1 한 자루였다. 한국에서는 경찰용으로 PSG-1을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정보는 실시간으로 들어왔다. 목표의 은닉처를 찾고 있는 일에 일선에 나선 경찰들로부터 수사팀보다 먼저 정보가 전달되고 있었다.
자정이 넘어서부터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RM은 한국의 기관에서 마련해준 안전가옥의 사무실에 앉아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뉴스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뉴스에서는 대통령 담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루빨리 목표를 잡아서 국민들의 불안을 없애주겠다고 했다.
뉴스를 보면서 태연하려고 했지만, 사실 그의 가슴은 다른 때와 달리 쿵쿵 뛰었다. 온몸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프리랜서. 어두운 세계에서는 누구나 경외하는 이름이다. 청부업자들 세계에서 절대로 부딪치지 않겠다고 모두 고개를 가로젓는 인물이 바로 프리랜서다.
모사드에서 청탁이 돌던 때가 있었다. 얼마 되지 않았다. 불과 6 개월 전쯤으로 기억한다. RM은 물론 TC의 일 외에는 청탁을 받지 않으니까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다른 청부업자들 사이에서는 꽤나 거액이 걸려 있는 일이라, 다들 호기심을 가졌다.
그렇지만, 프리랜서를 잡겠다고 나선 작자는 결국 아무도 없었다. 아무리 거액이라고 하지만, 모사드가 자기네 조력자들을 이용해서 잡지 못하고 청탁하는 일을 덥석 무는 것도 위험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들 모두가 프리랜서라는 이름을 두려워해서였다.
아무리 돈이 욕심이 나도 모험은 하지 않는 게 청부업자들의 특징이다.
새벽이 다가오면서 빗줄기가 거세어지기 시작했다. 아직은 비가 내리면 차가운 공기를 느낀다. 아프리카에서는 맛볼 수 없는 한기가 기분 좋게 느껴졌다. 느긋하게 눈을 붙여보려는데 문이 벌컥 열리고 기관원이 들어섰다.
“찾은 것 같소.”

특정된 건물은 4 층짜리 건물이었다. 그 주변에서는 가장 높은 건물이었는데, 좁은 골목 한가운데에 있었다. 주변에 더 높은 건물이라고는 없었다. 그 건물을 특정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부도가 나고 경매 중인 건물인데, 밤에 희미하게나마 불이 켜져 있고, 사람이 들락 댄 흔적도 있다고 했다.
주변에 더 높은 건물이 없다는 건 프리랜서다운 선택이다. 저격의 위험이 없고 주변을 감시하기에 좋다. 그렇다면 이미 자신의 은신처가 발각되었다는 것도 알 만한데, 상대가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까? 다른 사람도 아닌 프리랜서가?
PSG-1은 포기했다. 건물의 구조나 위치상 멀리서 저격하기는 틀렸다. 직접 진입해야 한다면, 칼과 소음총으로 충분하다.
비옷을 입고 배달용 자전거를 타고 골목으로 들어섰다. 특정된 건물을 향해 달려가면서 주변을 살폈다. 건물 안에서 희미하게 불빛이 새어나왔다. 자전거를 세우고 잠시 불빛을 주시했다. 그림자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저런 상태는 사람이 없거나, 자고 있는 상태, 잠복하고 기다리는 상태의 세 가지 상황이 있다. 그런데 수사팀이 몰려드는데, 잠복하고 있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주변을 살피면서 다시 자전거에 오르는데, 인기척이 골목 바깥쪽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몰고 반대편으로 달리려는데, 다시 반대편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순간적으로 수사진이 몰려든 거라고 판단했다. 빠져나가야 한다. 아니면 목표로 오해를 받아서 몸수색을 당할 수도 있다. 자전거를 버리고 사람 하나 겨우 비집고 들어설 만한 화장실 표시가 있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담장을 넘어 인쇄소 공장 뒷마당에 몸을 숨겼다.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구석에 앉아서 비 내리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잠시 귀를 기울였다. 문을 강제로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너무 좋지 않은 것 같다. 부비트랩이 설치되어 있을 확률이 높았다. 한국의 수사진은 목표에 대해서 아직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쾅. 폭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혼란을 틈타서 안전가옥으로 돌아 온 RM에게 기관원들이 결과를 알려주었다. 경찰 둘이 다치고 화재로 인해서 4 층 건물 전체가 전소 되면서 주변의 공장들로 불길이 옮겨갔다고 했다. 결국 화재만 일으키고 아직 아무도 현장에 접근하지 못했다고 했다.
“수사하고 있다고 하던 검사와 수사관들은?”
“나중에 현장에 오기로 했었소. 그런데 먼저 도착한 경찰들이 문을 열자마자 폭발이 일어났소.”
RM은 허탈하게 웃었다. 자기까지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현재 수사팀을 도청하고 있는 겁니까?”
“하고 있소”
“듣게 해주시오.”
RM은 기관원과 함께 도청실로 들어갔다.



3.

두진은 영란이 보여주는 CCTV 영상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었다. 영란의 머리에서 나온 작전이었다. 프리랜서에 대해서 알만큼 안다면 당연히 그래야 했다.
무조건 진입하기 보다는 감시가 먼저였다. 먼저 감시 카메라를 주변에 무려 열 개나 설치했다. 각각의 카메라에 그의 모습이 걸려들기를 바랐다.
혼자 움직인다면 분명히 건물 안에 김중식이 있을 것이고, 김중식과 함께 움직인다면 차량이 필요할 것이다. 골목 입구의 골뱅이 집에는 대운이 진구와 함께 앉아있었다.
공장 안에서는 밤새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들어가는 자도 없었다. 자전거 한 대가 나타났다. 배달부로 보이는 자전거를 탄 사람이 공장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그러다가 경찰이 나타나는 순간, 자전거를 버리고 비좁은 골목으로 사라지더니 담장 위로 훌쩍 모습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프리랜서인가 해서 대운에게 신호를 보냈다. 대운과 진구가 쫓아가는 중에 폭발이 일어났다. 자전거를 탔던 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제기랄. 눈앞에 두고 놓친 건가?”
대운과 진구가 비에 젖은 모습으로 사무실에 들어섰다.
“흔적도 없어?”
진구가 지친 모습으로 말했다.
“아니랍니다.”
“아니라니?”
“기관권이라고 팽반장님을 통해서 연락이 왔습니다.”
두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프리랜서는 벌써 빠져나갔다. 그리고 부비트랩에 경찰이 당했다. 그런데 프리랜서를 잡으려고 기관에서도 요원을 침투시켰다. 누군지 모르지만, 뛰어난 작자 같다. 대운과 진구가 달려갔지만, 혼란을 틈타 사라지는 재주가 뛰어났다.
어쨌거나 화재로 인해서 한동안은 현장을 조사할 수 없다. 프리랜서로서는 자기 족적을 감추는 데에 충분한 시간을 벌었다.
어디로 갔을까. 어디서 다시 실마리를 잡아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폰을 보자, 발신제한장치였다. 뭔가? 전화를 받았다.
‘오검사님?’
직감적으로 프리랜서라는 걸 알았다. 이 작자가 어떻게 내 번호를 알았지?
‘다시 전화 하겠습니다. 일단 사무실에서 나오세요. 그 사무실은 도청되고 있습니다.’
두진은 흠칫 놀라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두가 눈이 동그래져서 두진을 바라보았다. 두진이 급하게 사무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핸드폰으로 위치 추적을 하는 건 나중이다.
청사 밖으로 나와서 현관 앞에 서자, 다시 전화가 왔다.
‘주차장 왼쪽 끝에 있는 쓰레기통에 손을 넣어보세요. 새로운 전화기가 있을 겁니다.’
전화가 끊어졌다. 주차장 왼쪽 끝에 쓰레기통이 보였다. 담배 피우는 장소여서 지저분한 재떨이 겸 쓰레기통이 있었다.
달려가서 쓰레기통을 뒤졌다. 아직 새벽이라 주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경찰은 아무도 없었다. 쓰레기통 안에는 구식 폴더폰 하나가 들어있었다.
폴더폰을 집어 들자마자, 벨이 울렸다. 놀라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체 어디서 보고 있는 것인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전화를 받았다.
‘근처에 있지 않습니다. 그냥 예상한 시간에 걸었을 뿐입니다.’
프리랜서는 마치 보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두진은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몰랐다. 당황스러워서 머릿속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았나?”
‘쉬운 일입니다. 부산에서 쓰시던 전화를 그대로 사용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부산에서부터 내 번호를 알았다는 건가?”
‘물론입니다. 모사드의 사냥개들이 검사님 번호를 핸드폰 안에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랬군. 이제 어떻게 대화를 끌어가야 하지? 말려들지 말고 끌고 갈 만한 대화가 없을까?
“네가 누구인지 안다. 그런데 대체 목적이 무어냐?”
‘아시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까?’
“뭘 말이냐? 사람을 잔인하게 죽일 만한 이유가 대체 뭐냐?”
‘사람이 죽을 만한 이유라는 게 있을 리가 없지요.’
“그런데 어째서 이러는 거냐? 목적이 뭐냐?”
‘사람이 죽을 만한 이유는 없지만, 죽이고 싶은 이유는 천만 가지쯤 되지 않겠습니까?’
“이 세상에 사람을 죽일 만한 일이라는 건 없어!”
‘그런데 어째서들 그렇게 많이 죽이는 걸까요?’
“잘못된 거지! 잘못된 거야!”
두진은 갑자기 화가 나서 소리쳤다.
“이 세상 누구도 그럴 권리는 없어! 난 이제까지 어느 흉악한 범죄자라도 사형을 구형한 적이 없어! 그건 인간의 영역이 아니야. 신의 영역이야!”
전화기 너머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비웃어? 이 개자식.
‘검사님 철학을 들으려고 전화한 게 아닙니다.’
“전화한 목적을 말해.”
‘김중식을 죽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미 죽였나?”
‘죽이고 싶지 않으면 죽이지 않습니다.’
“그럼?”
‘검사님께 넘겨드리지요.’
“나에게? 어디서?”
‘광화문 네거리에 이순신장군의 동상이 있지 않습니까? 그 앞에 농성하던 천막들이 다 철거되지 않았더군요.’
“천막?”
‘그중 한 천막에 지금 막 농성하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가고 있을 겁니다. 내가 김중식이 거기 있다고 알려주었거든요.’
“뭐, 뭐야?”
‘어서 가보십시오. 지금 달려가면 그들보다 빠를 수도 있습니다.’

진구의 차로 달려가면서 영란에게 모두 나오라고 했다. 다 함께 차를 타고 광화문을 향해 달렸다. 경광등을 켜서 교통을 통제하면서 달려갔다. 그리고 광화문 네거리에 도착한 순간, 그만 그 자리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넋이 나가버렸다.
광화문 네거리의 농성장이던 자리에는 철거되지 않은 천막이 하나 있었다. 물품들만 쌓아놓고 이제 마저 가져가려던 천막이었다. 그 천막으로 농성하던 사람들이 달려들고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안에서 두 손이 뒤로 묶인 김중식이 끌려 나오고 있었다.
김중식의 입에는 재갈이 물려 있었고, 두 눈은 공포로 부릅떠져 있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끌려 나오면서 뜻 모를 고함을 질러댔다.
사람들이 재갈을 풀자, 그의 입에서 울부짖음이 터져 나왔다.
“경찰! 경찰 불러줘!”